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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이야기

개발자 취업

unsplash.com

무모함(Reckless)

쉽지 않네..

취업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려운 과정입니다. 가고 싶은 회사 한 곳만 정해서 복잡한 과정 없이 입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타깝지만 그런 행운은 제 생에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력서를 고쳐가며 구직 사이트에 있던 개발자 구인 회사에는 전부 지원했던 것 같습니다.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났지만 아무런 답변도 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뷰까지만 간다면 세 치 혀로 어떻게든 설득 가능할 것 같았지만 인터뷰 요청은 아쉽게도 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지쳐갔지만, 좋아하는 걸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는 목표 하나로 계속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이력서가 별로였던 걸까요? 포트폴리오가 별로였을까요? 기다리는 연락은 결국 아무 곳에서도 오지 않았고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가 세계적으로 개발자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러다가 캐나다에서 개발자를 많이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캐나다 구직 사이트들을 돌아다녀 봤는데 정말 개발자 구인 광고가 가득했었습니다. Indeed 기준으로 2000개는 되어 보였습니다. 2000개 중에 그래도 내 자리 한 자리는 있겠지 싶었습니다.

 

캐나다로 간다고 해도 잃을건 없었습니다. 1년 짜리 워킹홇리데이 비자를 받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1년 안에 무조건 승부를 보면 된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시기도 딱 비자를 받는 시점이어서 좋은 찬스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그렇게.. 캐나다에 가기로 결정합니다.

Somewhere in NorthYork
Somewhere in NorthYork

그렇게 얼마 후 뚜렷한 계획 없이 캐나다에 넘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특히나 돈은 비행기표를 제외하면 200만 원밖에 없었습니다. AirBnB에서 2주 동안 지내고 새로운 거처를 구해서 월세와 보증금을 내니 수중에 100만 원도 없었습니다. 식비를 제외하고 어디 돈을 쓴 곳이 없었습니다. 거리가 멀어도 걸어 다녔습니다. 캐나다의 대중교통은 한국보다 비싸기에 돈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가면 금방 취업할 거라는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결말이지만 믿고 싶지 않았던 결과였습니다. 캐나다의 회사들도 역시나 답변이 없었습니다. 캐나다로 넘어가기 전부터 회사들에 지원했는데 몇 군데에서 함께할 수 없다는 답변을 제외하면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이력서에 거짓 경력이라도 넣어서 지원하고 싶을 정도로 간절했지만,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거짓말을 할 순 없었습니다.

 

마냥 기다릴 순 없었기에 다른 직군의 일을 하며 시간을 갖고 일자리를 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어차피 운이 좋게 연락이 와도 채용에는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입에 풀칠 할 수 있는 직업이 필요했습니다. 접시 닦는 일과 서빙 하는 일들을 주로 지원했었는데 아무도 저를 채용해주진 않았습니다. 뭐가 잘못되었던 걸까? 저 자신에게 계속 물어보았지만 답을 찾을 순 없었고,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4월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모든 곳에서 거절을 당하고 나니 더는 캐나다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져온 돈도 전부 소진해서 딱 비행기표를 살 돈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달 월세를 내면 비행기표를 사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호주에서는 통장에 17불 밖에 없는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쳐나왔지만, 그런 고통의 시간을 다시 겪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캐나다에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창피했습니다. 뭘 더 해봐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수중에 10만 원도 없었기에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 했습니다. 성인이 되고는 처음이었습니다. 항상 어떻게든 제가 쓸 돈은 제가 알아서 했었는데 정말 수치스러웠습니다. 상황은 계속 안 좋아지고만 있었습니다.

 

개발이고 나발이고 일단은 부모님에게 손벌리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하기로 했습니다.

연결고리

죽으란 법은 없다는 말이 딱 이 상황에 어울리는 말 같습니다. 정말 운이 좋게 종로에 있는 작은 호텔에서 프런트 데스크 업무 직원을 구하고 있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제 인생에서 고용주가 먼저 연락이 온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상경해서 인터뷰를 보고 그 다음 주에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일단 초기 목표인 상경할 수 있어서 좋았고 부모님에게 더는 손을 안 벌려도 되어서 더더욱 좋았습니다. 나중에 대표님에게 어떻게 하다가 저한테 먼저 연락을 하시게 되었는지 여쭤봤었습니다.

“나도 그냥 모험이었지.. 그땐 사람 구하기 너무 힘들었어..”

역시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소기 목표를 이뤘으니 이제 호텔에서 업무를 시작하며 개발 일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말이죠.

 

평범한 회사에서 저를 채용해주지 않는다는 결론이 이미 나와 있었기 때문에 굳이 다시 시도할 필요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 창업하는 예비창업팀들로 눈을 돌렸습니다. 돈을 받지 않더라도 경력을 쌓는 방법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스타트업 팀 멤버에게는 자신의 전문 분야 말고도 다양한 분야의 능력과 공헌이 필요합니다. 그냥 회사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되지만 회사를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팀이 필요한 일을 해야 하고, 팀의 비전(혹은 목표)에 깊이 공감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다는 동기에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함께하게 된 팀은 축구를 좋아하는 팀원들이 모여서 누가 축구를 더 잘 아느냐를 판단하는 척도를 만드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했고 축구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열정이 불타올랐습니다.

개발도 좋은데 축구 관련 서비스라고?! 이건 못 참지...

개발 경력은 염려되었지만 비전의 공감과 열정이 잘 표현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함께 서비스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월급은 없지만 말이죠.

 

호텔 야간 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새벽 시간이 조용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제가 근무하던 호텔은 외국인들이 대부분이어서 밤늦게 주의가 필요한 손님은 없었습니다. 그런 덕분에 코딩할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1시부터 6시까지는 계속 코딩하고 퇴근 후 집에 와서도 개발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간단하지만 호텔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컴퓨터 업무도 자동화시키면서 재밌게 일했습니다. 동시에 방통대(방송통신대학교)도 시작했습니다. 제 최종 목표는 호주 이민이었기에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학위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몸은 힘들지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1년이 지난 후 개발한 프로덕는 시장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팀은 피벗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팀원들은 흩어지게 되었고 저는 1년의 경력을 갖고 다시 취업시장에 급매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고진감래

솔직히 경력이 있어서 취업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나아졌을 뿐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셀 수 없이 많은 회사에 지원했고 대부분 회사에서 답변은 오지 않았습니다.

개발자는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한 사람들 다 나와!

그분들은 키보드 상으로만 존재했기에 제 불평을 들어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람마다 개발 스타일이 다르고 개발자는 코딩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무를 해야 하는데, 그 “실력"이라는걸 어떻게 측정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운이 좋게 3곳의 회사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곳은 “어떻게 혼자서 개발을 배우죠? 흠..” 이라는 말과 함께 떨어지게 되었고 두 곳 중 한 곳은 연봉을 다른 곳보다 적게 책정해주셔서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데이터 엔지니어링과 프런트 엔드를 동시에 하는 개발자로 마지막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면접을 잘 봤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합격하게 되어서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개발팀장님이 저를 코너에 몰아넣는 질문들을 몇 가지 하셨었는데 1년 차 개발자가 어차피 대답 못할 걸 예상하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냥 모르는 건 모른다고 했었어야 했는데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며 답변하려다 보니 멍청하게 대답했었는데, 아마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여서 뽑아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2주 간의 휴식시간을 갖고 호텔에서 최종 퇴사한 후 개발회사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1년 6개월은 걸린 듯싶습니다. 쉽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끝에.. 사실은 집착에 더 가까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실패를 거듭했지만, 후반부에는 정말 운도 정말 좋았고 시간이 갈수록 제가 비빌 수 있는 틈새시장을 잘 찾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창업하려는 팀들이 훨씬 더 많아서 저와 같이 한 쿠션 먹여서 개발자가 되는 분들에게는 더 좋은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이 던지실 한 가지 예상되는 질문은 “왜 정부지원학원은 다니지 않았나요?” 인대요. 사실 처음에는 그러한 곳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 드렸지만, 그런 조언을 해줄 사람이 제 주변에는 없었습니다. 만약 알았다고 해도, 제가 살았던 곳에는 그런 학원들이 없습니다. 행정단위가 “시" 가 아닌 “군"이기 때문에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도, 극장도 없는 도시입니다. 솔직히 도시라는 말도 너무 거창하네요. 그런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하라고 해도 학원에 다녀볼지는 의문입니다. 학원에 다니면 너무 학원에 의존하게 되고 학원 측에서 하는 말만 곧 대로 믿기 때문에 좋은 판단은 아닐 것 같습니다. 채용해주신 팀장님이 해주신 말인데, 학원도 안 다니고 자기 스스로 공부해서 좀 더 마음이 갔다고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학원을 안 다닌 게 더 플러스 요인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들만 찾아서 꾸준히 했던것 같습니다. 100가지 안되는 이유보다 1가지 될 만한 이유만 계속 믿고 가다보면 원하는 걸 이룰수 있다고 알고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취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취업만 하면 모든 게 행복할 것 같았지만, 인생이 늘 그러하듯 한 발자국 걸으면 또 다른 허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여담.

캐나다에서의 추운 4월을 보내고,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은 다시 돌아와서 일 하고 있는걸 보면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4월은 원래 춥습니다.

마지막 -> 실무와 첫 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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